[21세기사회주의 컨퍼런스] 마이클 레보위츠 인터뷰: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 대안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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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in English here.] 국제전략센터/International Strategy Center -- 2016년 5월 24일 – 링크스– 마이클 레보위츠는 사회주의적 대안 구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연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온 맑스주의의 선도적 인물이다. 레보위츠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베네수엘라 까라까스의 미란다 국제 센터(CIM)에서 혁신적 실천방안과 인간 발전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책임자로 일하면서 “21세기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할 기회를 가졌다. 레보위츠는 최근 링크스와 공동 주최로 호주에서 개최된 21세기 사회주의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아래 내용은 컨퍼런스에서 레보위츠가 중심이 되어 논의한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신자유주의 반대와 사회주의 대안 전망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이다. 1998년 차베스 선거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핑크 타이드(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가 도래했습니다. 왜 신자유주의가 남미에서 번성할 수 있었습니까? 신자유주의가 무엇입니까?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자본 성장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를 제거하는 일련의 정책이며 중요하게는 수 세기 동안 자본주의 성장에 토대가 된 이데올로기입니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관점 대부분은 일반적인 고전 자유주의와 아담 스미스의 주장과 거의 평행을 이룹니다. 고립되고 개별적인 개인이 신자유주의의 핵심입니다. 개인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 신자유주의 논리입니다. 그래서 개인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줄이고 더 많은 돈을 주어야 더 효과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따라서 사회 프로그램을 없애고 사람들이 돈을 어떻게 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합니다. 공립학교 지원을 줄이고 가정이 자신들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상품권을 줍니다.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파는 조건으로 개인이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합니다. 즉 사람들이 독립적인 계약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고 따라서 단체 교섭을 지원하는 법률은 없앱니다. 밀턴 프리드먼의 책 제목이기도 한 “선택의 자유”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사상적 토대가 되는 핵심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이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를 상식적인 것으로 보이게 합니다. 정부가 경제에 간섭하지 않고 자본이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민영화, 규제 완화, 자유 무역을 주장합니다. 간단히 말해, 자본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합니다. 물론, 이는 경제에서 정부가 맡은 역할을 줄이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쓴 <지금 건설하라: 21세기 사회주의>에서 언급 한 바와 같이, 정부는 아담 스미스를 인용하자면 “인간의 어리석음과 불의로 인한 악영향”을 치료하는 역할만 담당해야합니다. 칠레는 피노체트 정권하에서 이러한 정부 역할 실험의 장이 되었습니다.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는 1981년 4월 12일, 칠레 일간지 엘 메르꾸리오와의 인터뷰에서 전환기에는 독재가 필수적인 체계일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국가에 다소 독재 권력의 형태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이 관점은 1930년대 전시, 소위 자본의 황금기를 거치며 차츰 퇴색해갔습니다. 그러나 자본의 늙은 두더지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대처와 레이건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보수 전문집단 속에서 양성되었습니다. 또한 위기와 경기 침체에 빠졌던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가 수면으로 올라왔습니다. 특히, 80년대와 90년대에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장 번성하였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가 번성할 수 있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소비재를 수입으로 대체하는 구조주의 개발 모델이 명백히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매우 불평등한 사회가 지속되고 특히, 토지 개혁의 부재로 포드주의 모델에서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한 국제 자본의 분공장에 대한 국내 시장에서의 소비자 수요가 불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국제 자본의 해외 진출 전략 또한 국제 경쟁력 강화라는 맥락에서 세계적 생산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경기침체 속에서 무역수지와 국제수지의 심각한 문제 등으로 쌓인 국가 부채로 인해 현재 정부 예산과 사회 프로그램이 삭감되었고 특정 국가들이 국제 자본 투자 장소로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세금을 낮추고 임금을 삭감해서 의료 문제와 환경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 시기에 [노동자 약화, 자본 강화]라는 신자유주의의 두 가지 측면이 라틴아메리카에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대안이 없다”는 신자유주의 슬로건과 달리 나는 “적어도 가설로라도 항상 대안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자본에 문제가 생기거나 임금이 삭감되거나 실업 문제가 대두될 때 자본, 자본의 규칙, 자본의 지배, 자본의 논리에 문제 제기할 때가 아닐까요? 신자유주의에 라틴아메리카는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신자유주의 영향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증가 할 때, 자본주의 정부의 기본 입장은 신자유주의의 최악의 영향을 뒤집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영화를 중단하고 사회 프로그램 삭감을 중단하고 불안과 불확실성을 조장하는 정책들을 중단시키는 것입니다. 바꾸고 바꾸고 또 바꿉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이 못됩니다. 확실한 적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악질 자본주의자들이며 자본주의 정부가 아니라 나쁜 정책입니다. 즉, 일찍이 차베스가 언급한 “제3의 길”인 비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또는 포스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입니다. 사마귀 없는 자본주의. 그러나 세계적으로 치열한 국제 경쟁으로 노동 및 환경기준 완화와 사회복지 수준 등이 최저 수준인 시대에 사마귀 없는 자본주의가 성공하리라 봅니까? 이런 상황에서 TINA의 도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치가 있더라도 이러한 정책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뒤바꾸기 위해 실행되고 있는 정책들에 대한 일반적 신뢰가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상당히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성장으로 활성화된 천연 자원에 대한 수요 증가와 국제 자본주의 경제가 호황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제3의 길, 사마귀 없는 자본주의 달성은 일부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행한 방법으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바로 포스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만들어낸 핑크 타이드입니다. 베네수엘라는 예외였습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도 같은 방식으로 시작했습니다. 그것의 핵심 모델은 식량 주권을 보장하고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교육과 의료 프로그램으로 사회 부채를 줄이기 위해 내생적 경제 발전을 위한 신구조주의 모델을 통해 산업을 구축하는데 자원 수익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나쁜 자본주의를 대신할 좋은 자본주의를 만들어 낸 방식입니다. 그러나 2002년과 2003년 차베스를 타도하려는 국내 과두세력과 미제국주의는 직장 폐쇄를 자행하며 좋은 자본주의를 원하지 않음을 만천하에 드러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기존 체제에 만족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부터 베네수엘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했습니다. 2003년 사회적 경제로 자본주의의 대안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으며 2005년과 2006년에 대안적 “21세기 사회주의”라 명명했습니다. 이는 차베스가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의 세포라 일컬은 노동자 자주관리와 공동체평의회를 육성합니다. 사회 민주주의와 핑크 타이드의 포퓰리즘 특성과는 대조적으로, 베네수엘라는 민중이 주체성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혁명적 민주주의의 개념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요즘 베네수엘라는 아주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온정주의와 부패가 내재된 문화와 무능, 이해할 수 없는 경제 정책의 영향과는 대조적인 혁명적 민주주의로의 움직임 때문은 아닙니다. 실제로 요즘 베네수엘라에 희망이 있다면 바로 혁명적 민주주의를 향한 정책들 때문입니다. (특히 꼬뮨에서 그러합니다.) 하지만 핑크 타이드는 어떠합니까? 사회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정책이 동력을 다하면 어떻게 될까요? 국제 자본주의 경제 둔화와 특히 중국의 수요 성장 감소로 지금까지 사회 민주주의 길을 택한 아르헨티나, 브라질, 에콰도르와 그보다 훨씬 덜한 볼리비아뿐만 아니라 그 길을 택하지 않은 칠레, 멕시코까지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대중 소비와 빈곤감소에 따른 수입 증가로 악화된 국제수지와 적자와 부채의 문제점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다른 모든 일들이 80년대와 90년대에 발생했던 것과 동일합니다. 결국은 TINA이고 기껏해야 인간의 얼굴을 한 TINA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핑크 타이드의 종말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일들이 반드시 똑같지만은 않습니다. 그 결과를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향후 전망은 어떠합니까? 신자유주의 정책으로의 회귀와 확실히 신자유주의를 추구할 새 정부가 점쳐지지만 우리는 대안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부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2004년에 출간된 <지금 건설하라: 21세기 사회주의>에서 주장했듯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정치적으로 자본을 쳐부술 준비가 되어 있고 민중 역량을 토대로 한 경제 이론의 실현 속에서 사회 운동 부문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러한 정부는 분명히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찾는 이들을 좌절시키고 흩어지게 할 것이며 또다시 대안이 없다고 결론 낼 것입니다. 그리스 시리자(급진좌파연합)정권은 라틴아메리카와 실제로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해서 작년에 쓴 <사회 민주주의냐 혁명적 민주주의냐: 시리자와 우리>에서 다음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선택은 항상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사회 민주주의다운 ‘영광 없는 패배'(바디우)의 길을 걷거나 노동 계급의 역량을 구축하는 혁명적 민주주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핵심은 환경과 인간 활동의 동시적 변화 또는 자기변화라는 혁명적 실천 개념의 중요성을 수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영광 없는 패배”를 피하려는 라틴아메리카의 전망은 무엇입니까? 비록 핑크 타이드와 볼리바르 혁명의 현재 상황이 매우 밝지만은 않지만, 이러한 선택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민중들이 “아니오”라고 할 때 “예”라고 한 시리자 정권의 그리스 민중을 철저히 배신을 했더라도, 비록 이제까지 벌어진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시리자 정부에게 열려있습니다. 정부는 혁명 주체를 세우고 대중의 창조적 에너지를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안을 도입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다음과 같은 새로운 국가 발전을 지원하고 경찰, 사법, 군사 등의 권력을 가진 기존의 국가를 자본의 직접적인 지휘 하에 두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권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가 혁명적 민주주의의 길을 갈 수 있을까요? 자본주의의 긴축과 경기 침체 시기에서 선택이 사회 민주주의 길, 포퓰리즘의 길이 아님을 인식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라틴아메리카 민중이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한 신자유주의 만행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아님 사회주의 대안으로 자본에 맞설 의향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맞선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그 대안을 엿볼 수는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꼬뮨과 공동체평의회에서 그 투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의 신자유주의로의 회귀에 대한 저항과 노동자가 관리주체가 되어 회생된 기업을 관리하는 자주관리의 경험으로 현행 체제에 맞선 투쟁과 아래로부터의 민중 역량 강화를 함께 이뤄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차라리 신자유주의가 아닌 사회주의 대안을 선택할 것을 아래로부터 압박을 받는 볼리비아나 에콰도르 같은 정부도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자본의 논리가 상식처럼 보이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에 직접 맞서는 것이 이 투쟁에서 필수적입니다. 개별의 이익 극대화에 중점을 두는 대신에 충만한 인간 발전이 중심입니다. 이는 맑스가 “발전을 위한 노동자 자신의 요구”라고 일컫는 인간 능력의 충맘ㄴ한 실현과 공산당 선언에서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이들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임을 인정하는 개념이며 특히 주체성과 참여는 개인과 집단의 완전한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명시한 볼리바르 헌법의 주장을 강조하는 인간 발달과 실천의 핵심 고리입니다. 즉, 사상 투쟁은 필수적입니다. 인간 발전의 중요성을 당연시 여기는 것은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입니다. 그리고 이는 실천을 요구합니다. 자본이 아닌 민중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존 국가를 함락하려는 투쟁뿐만 아니라 작업장과 지역 사회에서 노동계급의 주체성을 통한 역량 구축이 필요합니다. 사회주의 운동에서 강고한 노동 계급을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국가를 전복하고자 하는 목적으로만 민중을 조직하는 한계를 너무나 자주 드러냈습니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에서 탄생하고 기층도 능동적이었기 때문에 잠시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주었던 시리자 경험으로부터 다시 배워야 합니다. 사회 민주주의와 혁명적 민주주의에 대해 쓴 글에서 시리자의 교훈은 환경과 인간 활동의 동시적 변화 또는 자기변화라는 혁명적 실천 개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기억하고 적용하기에 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았습니다. 라틴아메리카가 반란과 집회, 점령이 일어나는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냉각 용암을 제외하고는 거의 남기지 않는 화산처럼 자발적인 분출인 것입니다. 당신 위에 군림하는 당이 아닌 운동을 조정하고 연계할 당이 필요함을 누누이 주장해 왔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자체에 맞선 투쟁에서 성공 할 수 있을까요? 제 신조는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 ‘며 의지의 낙관주의는 투쟁을 의미합니다. 계급투쟁은 상황을 변화시킵니다. 그것은 다른 모든 일들이 더 이상 같게 두지 않을 것입니다. 번역: 홍정희(번역팀, ISC)